'홍학의 자리' 읽고
원체 소설을 잘 읽지 않는 편인데,
최근 자기계발 관련 서적만 읽다보니,
조금은 아무생각없이 편하게
소설 한권 읽고 싶은 생각에
밀리의 서재를 어슬렁 거리다
발견한 책이 바로 '홍학의 자리'였다.
때마침, 출장가는 비행기는
아시아나의 작은 항공편이었고,
딱히 비행시간 동안 영화로
킬링타임하고 싶지 않아,
책을 보기 시작했는데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었다고 생각되었던 책이다.
넌 아무 잘못 없어.
그러니까 너 스스로를 너무 무너뜨리지마.
정해연- 홍학의 자리 中
▣ 몹쓸 되물림
소설을 읽으며, 전혀 다른 내용이지만 계속 영화 '똥파리'가 생각났다. 어두움의 단면에서 나타나는 습관들은, 밝음의 그것보다 되물림이 쉽게 된다. 부의 되물림도 있지만, 생각보다 '빈곤, 악의 되물림'에서 오는 문제는 심각하다.
사회화 되는 과정에서 일상적이지 못한 상황, 남들 보다 뒤쳐진 다른 시작점에 놓였다면 쉽사리 따라잡을 수 있을까? 그들이 견뎌내야하는 건, 단순한 상황만이 아니다. 사회가 바라보는 시선과도 극복해 내야한다는 것. 극복해보겠다는 마음을 쉽게 버리고, 다시 침전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의 대부분이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퍼주기식의 분배 정책을 선호하지는 않지만, 분명 출발점이 늦고 사회적으로 보호가 필요한 분들에게는 이들을 정상범주로 돌려 '몹쓸 되물림'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안전망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출처-Getty Images]
선생님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저 뿐이에요.
정해연- 홍학의 자리 中
▣ 온전하게 이해하다
우선 드는 생각은 '온전하게 이해를 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이다. 우리는 저마다 상황과 가치관, 살아온 경험이 다른데 어떻게 온전하게 이해를 할 수 있을까? 물론 어느정도 비슷한 상황에서 겪는 유대를 토대로, '가늠하고 다독여 줄 수 있는 상태'를 '이해한다'고 하면 가능하겠지만.
이렇게 비뚤어지게 '이해한다'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이해하려는 태도 자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이해하려는 타인을 받아들이는 나의 자세를 생각해 보기 위해서이다. 혹시나 타인이 나를 이해해주기를 기대하지는 않았었나? 집단에서 나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 더불어 타인에게 나의 견해가 이해 되지 못할 때 상처를 받지는 않았었나?
소설을 읽고 나서 들었던 생각은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였다.
실제로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니라, 기대를 해서는 안되고 타인에게 이해를 해달라고 의존적이면 안된다는 생각이다.
반대로, 나는 타인을 얼마나 어디까지 이해해 줄 수 있을까? 슬프고 고독하지만, 역시나 자신을 아껴주고 감싸줘야하는 대상은, 또 온전하고 견고하게 버텨내야하는 건 언제나 나 자신이다.
[출처-Getty Images]
사실,
책은 소설이고 스릴러이다 보니,
따로 문구를 발췌하여 정리하기엔 어려운 책이다.
하지만,
범인을 쫓는 과정에서
알 수 없는 심연의 무거운 무언가
침전하는 어두움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마지막 작가의 서평에서 정리가 되었다.
'스릴러는 경고입니다.'
이번의 소설에서 하고자 했던 경고는
인정욕구 였다고 한다.
[출처-Getty Images]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인정 받는 다는 것이
목적이고 방향이 되어서는
안될 것 같다고
다시금 생각하게 된 소설이었다.
다른 빛나는 또 필요한
가치를 추구하다 보면,
따라오는 것이 인정이니까
아니면 말고.
우리 모두
나 스스로를 감싸주고
인정해줄 수 있는
하루를 보내시길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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